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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시 시작이다..."

침대에서 눈을 뜬 은수는 생각했다, 또 같은 하루가 반복되겠구나.

신물 나게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어떻게 해서도 빠져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 은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뜬 은수는 잠을 깨기 위해 라디오를 틀고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한다.


라디오에서는 밝은 목소리로 아침을 깨워주는 DJ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세상 사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다들 뭐가 그렇게 재밌지... 하루하루 뭐가 그렇게 다른가"

혼자 조용히 읊조리듯 말한 은수는 크게 한숨을 내쉰다. 먼지 덩어리 같은 한숨 덩어리가 툭 하고 쏟아진다.


이런 기분을 조금이라도 덜어볼까 풀린 날씨에 맞게 가벼운 외투를 걸치고 대중교통 대신에 가게까지 걷기로 한다.

신호등에 서서 초록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은수는 부쩍 가깝게 다가온 여름의 냄새를 맡는다

"이제는 봄이 없네..."


개점 준비를 하는 가게들을 스쳐 가면서 사람들의 열심히 사는 모습을 구경하는 은수는 이런 모습들에 조금은 자극받기를 바라지만

마음 깊숙이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봤자 뭐 하나 바꿀 수 없는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2차선 길가 가판대에 여과 없이 전시된 건어물들과 상품들이 눈에 거슬리는 은수

"미세먼지가 위험수치라던데..."

마스크를 쓰고 양손 가득 장거리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든 아주머니는 전시되어 있는 건어물을 고르고 

아저씨와의 흥정에서 승리한 듯 상기된 얼굴로 "역시 단골이라 좋아"라고 말한다.

문득 아침에 대형마트 전단지에서 본 더 저렴한 건어물이 떠오른 은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찬다.


미세먼지와 차 매연으로 뒤덮인 건어물... 

마스크를 낀채 그런 건어물을 사는 아주머니...

월세도 내지 않으면서 그런 건어물을 더 비싸게 파는 아저씨...

뚜렷해 보였던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모습이 먼지처럼 번져 보이기 시작한 은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가게에 도착해 오픈 준비를 마친 은수는 첫 개시만이라도 좋은 손님이기를 바라본다,

하지만 역시나 바람과는 반대로 아주 시끄러운 첫 손님을 맞는다

"아이스아메리카노 2잔이요"

"테이크 아웃이신가요?"

"네"

"그럼 할인해드릴게요"


달칵달칵 커피 갈리는 소리와 냄새가 오늘도 다시 시작이구나라는 걸 일깨워준다

"커피 나왔습니다"


커피를 들고 자리에 다시 앉는 손님

5평 남짓 작은 매장은 손님들의 얘기 소리로 가득 찬다.


누군가에게 재밌는 이야기들이 남에게는 듣기 싫은 소음이란 걸 알지 못하는 손님은 마치 이야기를 자랑이라도 하듯 더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가깝고 좁은 공간에서는 적당한 목소리로 말해도 다 들린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마치 보청기를 한쪽에 꽂아서 귀가 잘 안들리는 사람처럼


"내가 어제 씨발... 그년이랑 한 번 해볼라고"

"크크크 그래서 갔냐?"


더이상 이야기를 들을 자신도 그리고 할인해준 금액이 더럽게 느껴진 은수는 자리로 다가가 말했다

"저기... 테이크아웃이시라서 할인해드린 거거든요"

"저희 금방 나가요"

"아.... 네"


용기를 내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익숙하지만 익숙해지지 않음에 은수는 고개를 숙인다.

이상한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사람들이 먼지로 보이는 것이 당연한 걸까, 

아니면 머릿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람을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아 버리기로 결정한걸까...

매번 놀랍고도 화가 나는 상황들은 먼지가 되어 은수의 마음에 쌓인다.


" 씨발 그래서 그년이랑 갔는데 와.... 졸라 죽이는 거야"

" 미친새끼"


은수는 대부분의 남자 손님들이 여과 없이 쏟아내는 무용담을 하루에도 여러 번 듣는다, 그래서인지 가게를 시작하면서 결혼을 포기해버렸다

어제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꺼내던 남자의 목소리가 먼지가 되어 날아온다. 


은수는 다가오는 먼지들을 향해 손을 저어본다, 그 먼지들이 더 마음에 쌓이지 않도록...


특별할 것도 없이, 여느 때와 같이 불쾌한 먼지들로 가득 찬 하루의 끝을 알리는 노을빛이 가게로 들어온다.

은수는 눈을 지그시 감고 노을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오늘 하루도 얼른 끝나버리기를 기도한다.


마감 5분 전에 들어온 손님으로 30분이나 늦게 집에 들어온 은수는 바쁘지 않은 가게 일에도 녹초가 되어 버렸다.

하나하나 가볍던 먼지들이 은수의 몸과 마음에 한겹 한겹 쌓여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져 버렸다


집에 도착한 은수는 불을 켤 힘도, 목욕 할 힘도 없이 캄캄한 거실 소파에 몸을 던진다

눈을 감은 은수는 자신의 몸이 먼지가 되어서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Write by 쏭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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