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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가 안고 있는 우울증을 모든 불행의 근원처럼 여긴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왜 나만’ 하며 나와 세상을 동시에 원망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울증은 그냥 나와 함께하는 오래된 친구려니, 그렇게 대강 심상하게 여기는 것이 가장 무난한 것 같다.

  우울증이라는 놈은 관심을 너무 주면 내 모든 것이 죄다 제 것인 양 설쳐대고, 관심을 너무 안 주면 나 여기 있으니 좀 알아달라고 발악을 하다 기어코 뭔가 사고를 치고 만다. 별수 없이 고속버스 옆자리에 함께 앉아 가게 된 그다지 친하지 않은 친구처럼,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이 녀석과 동행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그 녀석에게 휴게소에서 산 호두과자라도 어색하게 권하게 된다. 녀석을 눌러 없애려 하지도 않고 맹렬하게 미워하지도 않고, 그냥 ‘내 옆자리에 누가 있나 보다’ 하며 창밖 경치도 보고 책도 읽고 그러다 보면 녀석도 어느새 조용해져 있다.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 | 김현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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